[나, 너 그리고 우리의 도시2] 국내 환경영향평가의 절차적 문제와 개선 방향

관리자
발행일 2023-08-01 조회수 3863

[도시개혁 26호/여름호,재창간4호] [나, 너 그리고 우리의 도시2]

국내 환경영향평가의 절차적 문제와 개선 방향


김진오 도시개혁센터 주거분과장
jokim@khu.ac.kr


 
환경영향평가는 특정 사업의 계획 단계에서 과학적·인문사회적 지식을 기반으로 해당 사업의 개발 및 운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환경 영향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회피 또는 저감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정책적 도구이다. 이러한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1981년 처음 도입한 후 1993년 단일법에 기반하여 본격 시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환경영향평가의 순기능적 도입취지에도 불구하고 ‘부실평가’, ‘졸속운영’이라는 그림자가 늘 따라다니고 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 졸속으로 운영되기 때문인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예견은 언제나 어렵기 마련이다. 특히나 복잡한 원인과 단기간에 곧바로 드러나지 않은 환경문제의 속성상 명확한 예측도 정밀한 평가도, 대안의 환경적 효과성도 늘 어렵고 불확실성의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최신의 기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의 정확성과 평가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급성장하는 AI와 빅데이터 산업은 환경영향평가의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결국 운영 즉, ‘프로세스 관리’이다. 똑같은 목표를 가진 정책 수단이라도 이를 어떻게 적용하고 관리하느냐는 결국 그 수단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영향평가의 시행 시기 문제
우리나라 환경영향평가는 시행 시기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환경영향평가가 교통영향평가, 재해영향평가, 건축계획 심의 등 사업승인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이들에 우선하지 않고 동시 또는 후속 단계에 진행됨으로써, 개발계획으로 인한 중대한 환경문제가 예측될 경우 계획의 상당한 변경이나 취소를 결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건설사업자에게는 이익창출에 중요한 세대수와 건축규모 등 건축계획의 허가가 가장 우선시 되며 환경영향평가는 일부 조정과 협의를 거쳐야하는 다소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일 뿐 사업진행의 여부를 결정할 만큼 중대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소요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경제성 분석과 자금조달 계획 및 토지확보 관련 절차가 상당 부분 진행된 후 계획을 수립하게 되면 전략 또는 환경영향평가에서 해당 사업의 입지와 핵심적 계획내용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기에는 더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환경영향평가가 계획의 환경적 질을 개선하는데 목표를 둔다면 이 같은 논리가 타당할 수 있지만, 애초부터 잘못된 입지 선정으로 인해 중대한 환경훼손을 유발시키는 계획이라면 이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같이 경제성을 위시한 사업자 편의 위주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환경영향평가의 실효성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업대상지의 입지 적정성을 따지는 전략환경영향평가가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경제성 평가와 동등한 혹은 심지어 이전 단계에서 검토되어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 전략환경영향평가 후속으로 실시되는 환경영향평가 역시 인허가를 위한 다른 유형의 평가들보다 선행적으로 수행하여 다른 계획들의 핵심적 기초가 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환경영향평가의 작성 주체 및 운영 문제
미국과 유럽 등 많은 국가들이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을 사업자가 하도록 규정하고 이에 대한 비용과 책임을 물도록 하고 있다. 소위 ‘사전 예방원칙’에 근거하여 개발 등을 통해 환경훼손을 하는 자가 스스로의 비용으로 그 영향을 예측하고 회피 또는 저감방안을 직접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을 사업자에게 맡김으로써 부실작성을 초래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받으며 공탁제 도입의 필요성을 촉발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공탁비용의 적정성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사업자가 평가서 작성 비용을 내고 공탁을 통해 제3자로 하여금 평가를 할 경우 사업자는 오히려 부실작성의 책임 소재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반대로 작성자는 제한된 비용으로 과도한 책임을 떠안을 우려가 있다. 또한 계획 협의과정의 하나인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계획의 중대한 변경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업자가 아닌 제3자가 평가할 경우 평가의 중요한 기능인 대안수립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수 모든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비용과 인력 측면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크고 작은 수많은 개발사업들에 대해 정부가 공공의 비용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것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미국에서는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비용을 지원하거나 직접 추진하는 개발사업의 경우에만 정부가 직접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공의 비용으로 추진하는 만큼 환경영향평가를 더욱 엄격하고 책임있게 수행하겠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현행 법 또한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어 해외 정책 방향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사업이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추진하는 중요 사업들에게 대해서는 신속한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소위 ‘봐주기식’ 환경영향평가를 하거나 심지어 약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개발사업 부처는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해당 사업이 환경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있는지를 국가적 차원에서 냉정하게 진단하려 하기보다는 빠른 시일내에 환경부와 협의하고 승인하여 정부의 신속한 개발사업을 지원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부처간 역할 분담과 상호 견제가 사라지고 개발사업의 신속한 승인과 진행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소위 일반 민간사업자의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이는 현행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으로, 공공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 및 정책적 보완에 대한 적극적 변화가 필요하다.

환경영향평가가 계획의 환경적 영향 예측을 바탕으로 사업의 중대한 계획변경이나 취소를 결정할 만큼의 제도적 위상을 가질 수 없다면, 앞으로도 ‘부실평가’, ‘졸속운영’이라는 반복적인 비판을 결코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행 환경영향평가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획기적 변화 없이는 그 순기능의 효과를 온전히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사결정과정의 핵심 단계인 환경영향평가의 수행시기와 작성 및 운영에 대한 논의는 평가의 정확성을 위한 과학적 지식의 개선 못지 않게 중요하다. 아니 아무리 정밀하고 명확한 수준의 예측이라도 효과적 적용을 위한 프로세스의 관리와 개선이 없이는 정책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의 시행 시기의 문제점에 대한 신중한 제고와 특히 국가가 추진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보다 신뢰성 있는 평가 및 체계적 프로세스 관리가 필수적이다.

많은 정책적 결정이 정치·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환경 보전 만큼은 결코 정치적 결정의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각종 개발로부터 환경파괴를 막고 지킴으로써 후세들에게 지속가능한 환경을 물려주는 것은 그 어떤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희생되어서는 안 될 인류의 중대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근대 생태윤리의 기초를 마련한 미국의 생태학자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는 “환경을 위한 윤리적 행동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심지어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이를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 경고했다. 앞으로 환경을 위한 옳은 일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며 환경영향평가가 합법이라는 미명아래 환경을 훼손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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