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4] 바꿀 것인가, 아니면 바뀔 것인가?

관리자
발행일 2022-01-24 조회수 9221

[도시개혁 23호/겨울호,재창간호] [특별기획4]

바꿀 것인가, 아니면 바뀔 것인가?


- 대전환의 시대에 국토 균형발전과 지역 자치분권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서 -


김근영 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
gykimusc@empal.com


 

대전환의 시대, 균형이 깨진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바뀌고 있다. 바뀌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만이 아니다. 세계가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했다. 혁명의 기운이 오래된 기억의 창고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다. 18세기 중반에 시작되었던 산업혁명의 냄새와 비슷하다. 산업혁명으로 인류가 지난 250여년 이상 이룩한 기술발전의 긍정적, 부정적 영향이 20세기 내내 이곳저곳에 널 부러져 있었다. 그 오래된 영향들이 시대전환이라는 화산아래 거대한 마그마 방에 흘러들어가 다음 분화를 위해 차곡차곡 축적되었다.

새로운 물결은 1970년대에 도래했다. 산업혁명으로 이룩한 우리의 문명을 교체할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지식정보 혁명이었다. 그 물결은 월드와이드웹과 애플 컴퓨터, 스마트폰과 GMO(유전자변형 농수산물)를 거쳐 4차 산업혁명에 이르렀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바벨탑과 같았던 110층의 세계무역센터가 21세기 원년에 9-11 테러로 무너졌다. 산업혁명으로 이룩한 우리 삶의 화려한 금자탑과 방치된 폐기물 위에서 4차 산업혁명의 총아들이 차츰차츰 불협화음과 마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는 대전환의 방아쇠를 당겼다. 코로나 19는 양극화와 지역갈등, 피로사회와 분노사회, 전통산업과 첨단산업 간 투쟁으로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용암이 가득 찬 마그마 방에 균열을 만들었다. 결국 시대전환이라는 화산이 폭발했다. 마그마 방 용암 덩어리에 덧붙여진 기술혁명의 도전과 압력, 가속과 혼란, 투쟁과 모순이 그 폭발력을 더욱 키웠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사회계층 간 갈등과 불신이 폭발의 충격파를 더욱 확장시켰다. 그렇게 대전환의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2020년 시대전환은 세 가지 요인이 핵심이다.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이 큰 것은 기후변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예측한 지구의 미래는 우려스럽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발표된 연구결과는 더 비관적이다. 그럼에도 산업혁명으로 쌓인 온실가스 배출에 대처하는 탄소중립 실천은 아직 효과적이지 않다. 두 번째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코로나 19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미래로 향하는 ‘창조적 파괴’를 본격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마지막이자 가장 최근에 다가온 코로나 19는 사람들의 희망적인 예상을 계속 뛰어넘어 5차 대유행을 시작했다. 마치 몇 달 안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5년간의 지루한 참호전 끝에 수천만명의 희생자를 낸 제1차 세계대전과 같다. 그리스 신화의 ‘운명의 세 여신들’이 현신해 우리가 새 길을 열도록 재촉하고 있다.

‘운명의 세 여신들’의 긍정적, 부정적 영향들이 지금 이 땅에서 인구충격으로 현실화되었다. 2019년 10월을 정점으로 인구가 자연감소하고 있다. 2030년대 중반에는 총인구가 오천만명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지역 간 인구 불균형은 심화되고 있다. 2019년 말 수도권 인구가 전국의 절반을 넘었다. 주택공급이 제한된 상태에서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돈이 천문학적으로 풀리자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2020년에 이사한 사람들이 지난 십년 동안 가장 높은 774만명에 달했다. 경기와 제주가 인구이동의 최대 수혜지가 되었다. 인구감소 시대에 차령산맥을 경계로 남북 간의 인구격차가 더욱 커졌다.

지금 우리는 도처에서 균형이 무너지는 대한민국을 목도하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는 국가와 경제, 사회의 발전을 위해 왕조시대 이후의 국민국가에 적합한 균형점을 찾았다. 1953년 한국은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자 한민족이 서로 총을 겨눈 한국전쟁을 겪은 인당 소득 67달러의 가난한 나라였다. 그로부터 경제규모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6위의 국가로 발돋음했다. 과거 우리의 성공을 보장했던 균형이 우리가 쌓아온 모순과 압력으로 붕괴되고 있다. 새로운 균형점을 세워야 할 때다.

지방자치 부활 30년, 허상(虛像)에 박제된 희망과 수사(修辭)에 매몰된 혁신

국가State와 시장Market, 지역사회Community는 선진사회를 튼튼하게 지탱하는 삼각축이다. 이 말은 금융경제 석학인 시카고대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교수가 했다. IMF 최연소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미국 재무학회 회장,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하고, 피셔블랙상과 도이체방크 금융경제학상을 수상한 그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국가운영과 실물경제, 사회구조에 혜안을 가진 세계적인 전문가다. 그의 말처럼 사회는 국가와 시장, 지역사회가 균형을 이룰 때 안정되고, 창의력과 역동성이 생겨 발전한다.

균형은 자율과 견제가 활발하게 작동할 때 이루어진다. 국가와 사회의 자율과 견제가 무너지면 쏠림현상이 심해진다. 대한민국이 현재 그 길로 가고 있다. 경제와 사회발전에 해밝은 라잔 교수는 삼각축의 출발점이 지역사회라고 했다. 지역사회가 더 강해지기 위해 서로 뭉쳐 국가를 건설했다. 국가의 다양한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시장이 출현했다. 그런데 이제는 강력해진 국가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지역사회를 침대에 눕혀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자르고 늘린다. 시장은 ‘키메라’처럼 불을 뿜어 숲과 농작물을 태우고, 주위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무자비하게 포식하는 괴물이 되고 있다. 라잔 교수는 지역사회만이 국가로부터 지역의 특성과 다양성을 보존하고, 시장의 희생자를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치분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나긴 민주항쟁 끝에 1987년 여야가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개헌에 합의했다. 10월 29일에 공포된 헌법 제10호에 의해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87체제가 출범했다. 15년간의 간선제를 종식하고 ‘오로지 내손으로 대통령을 뽑고 싶다’는 열망을 실현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지방자치에 대해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았다. 1991년 30년 만에 선거로 지방의회가 구성되었다. 1995년 전국단위의 지방선거가 전면적으로 실시되어 광역•기초 자치단체장과 의원, 교육감이 선출되었다. 그 이후 여섯 번의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지방선거에서 여러 차례 여야가 교체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방자치가 중앙에 예속되면서 쏠림현상과 지역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 양극화다. 인구, 경제, 교육 등 사회 발전의 모든 기반에서 쏠림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인구수가 9백 5십만명 이상인 광역지자체가 17개 중에서 서울과 경기의 2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15개의 인구는 모두 서울과 경기 평균의 30%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상위권 2개의 인구비중은 1992년 39%에서 45%로 계속 증가했다. 경제와 교육 기반의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2019년 기준으로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사 84%, 고용 92%, 매출액 95%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수도권은 관리자•전문가의 70%, 박사학위자의 64%, 대학전임교원의 65%를 보유해 혁신역량도 우수하다.

잘못된 진단과 처방은 병을 키운다. 대한민국의 광역행정체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일본에 망명했던 개화파들을 동원해 갑오개혁(甲午改革)을 추진했다. 조선 8도는 23부제로 개편했다. 이듬해인 1896년 아관파천 중이었던 조선은 23부제를 폐지하고, 8도 중에서 남부(충청·전라·경상)와 북부(평안·함경)의 5개 도를 남·북도로 나누었다. 13도제는 오늘날 광역행정체제의 뿌리가 되었다. 김순은 자치분권위원장은 한민족이 단합해 일제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조선 8도를 13개도로 쪼갰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G7으로 대표되는 선진국들은 적정규모의 인구를 가진 도농통합형 광역행정체제로 균형적인 자치분권을 실천해 내치를 안정시켰다. 중앙집권의 역사가 오래된 프랑스도 2014년 22개 지역정부를 13개로 개편해 최소인구 2백 5십만명 이상의 광역자치제를 출범시켰다. 미국, 독일 등 다른 G7국가들은 주정부 중심의 연방제를 운영한다. 극일(克日)을 하려면 제대로 하자.

정치권은 지역 자치분권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는다. 단지 표와 자리를 위한 현란한 수사로 광역자치제도 개편을 포장한다. 발전의 헛된 희망을 부추기고, 지역감정을 들쑤시는 광역시•특례시 승격과 분도를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제시한다.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대선후보는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위해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2017년 대선에서 다른 후보들도 지방분권 개헌에 대해 유사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2018년 발표한 『자치분권 종합계획』에서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인구감소, 4차 산업혁명, 남북통일 등 화려한 수사로 추진의 필요성이 포장된 중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2021년 6월 개최된 지역분권 관련 3개 학회 연합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모두 국토 균형발전과 지역 자치분권에 대한 자치분권 3법의 문제와 한계를 지적했다. 2020년 통과된 자치분권 3법으로 과연 우리가 맞이한 대전환의 시대를 제대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대전환의 물결에 대응하는 지역 자치분권, 대한민국의 새로운 균형을 향하여

“인간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한다”라고 역사가 타키투스는 말했다. 현실 안주의 껍질을 깨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대전환의 시기에는 변화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19세기에 세계 각국으로 산업혁명의 물결이 다가오자 조선은 쇄국을 택했다. 일본은 1868년 도쿠가와 막부를 깨고,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다. 7년 후 일본은 강화도에서 운양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침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20년이 지나자 청일전쟁에서 승리했고, 다시 10년 후에는 러시아를 패퇴시켜 강대국으로 도약했다.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는 자주 오지 않는다. 혁신에 대응할 기간은 짧다. 2020년 대전환의 시대는 어떤 사회가 기후변화와 4차 산업혁명, 코로나 19, 인구충격에 잘 대처하는가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우리는 때로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어 설명’하는 잘못을 범한다. 그래서 문제해결이 어려워진다. 인구감소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지역사회Community의 생존전략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가 바로서야 인구충격에 대처할 수 있다.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광역•기초 자치단체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광역자치단체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행동하는 국가로부터 지역특성과 다양성을 보존하고, 시장과 소통해 지역 경쟁력을 확보해야한다. 광역자치단체가 그렇게 기능하도록 적절한 인구•산업 규모와 자치권이 필요하다. 기초자치단체는 광역행정구역이라는 모자이크가 원팀으로 훌륭하게 기능하도록 자신의 색채를 강화하면서도 주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광역자치단체가 시장과 협력해 조성한 경제기반으로부터 수혜를 극대화해 시장의 희생자를 보살피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한 국토 균형발전과 지역 자치분권을 위한 방안과 로드맵이 필요하다. 그 방안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광역행정체제의 개편이다. 광역자치단체가 자율과 자기주도적으로 지역의 잠재역량을 일깨워 경제자립을 이루도록 적절한 규모의 인구와 행정여건이 필요하다.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최소 인구규모 2백 5십만 이상이 되도록 광역자치단체가 개편되어야 한다. 기존의 광역시와 도는 서로 상생 협력할 수 있도록 하나의 광역자치단체에 소속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에 소속된 지방 소재 특별지방행정기관 사무는 광역자치단체로 이관이 필요하다.

둘째, 광역도시계획의 개편이 필요하다. 기존의 광역도시계획들을 통합해 효율적인 단일 ‘대도시권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광역행정구역에 소속된 대도시와 중소도시, 군을 포함하는 대도시권을 지정해 도시계획과 주택, 주요 도시기반시설과 교통, 산업과 고용, 상하수도 등의 물 관리와 재난관리, 에너지와 환경, 쓰레기•폐자원 관리 등을 계획해야 한다. 계획실행의 구속력도 강화해야 한다. 계획은 인구충격에 대비해 압축도시, 연계네트워크, 스마트도시와 같은 지역 재편을 실행하는데도 효과적이다.

셋째, 중앙정부와 광역•기초 자치단체 간 행정 협의조정 시스템과 예산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대도시권에 포함되는 모든 기초 자치단체들이 참여하는 행정협의체의 설립이 필요하다. 대도시권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예산규모와 기간을 사업별로 제시해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높여야 한다. 행정협의체 관할 대도시권계획을 수립하는 전문연구기관이 필요하다. 지역 자치분권을 위한 예산체계도 개편되어야한다. 지역 간 경쟁을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고, 최적방안을 도출할 정책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네 번째는 지역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자치권의 신장이다. 지방선거의 쏠림현상으로 인한 단체장과 의회의 동조화를 방지하고, 의회의 단체장 견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선거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자율과 책임행정이 구현될 수 있는 규모를 갖춘 광역자치단체는 입법, 치안, 사법, 교육 자치권의 확대를 추진한다. 물에 들어가야 수영을 배운다. 그러나 적절한 정책기능과 시장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규모에서는 담합과 부패의 씨앗이 싹튼다.

마지막으로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 간 국정의 파트너로서 건전한 견제와 협력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시혜하듯이 공공기관을 이전하거나 기업에 압력을 가해 혁신센터를 조성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대규모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주는 것도 피해야 한다. 광역자치단체가 숙고해 자신의 예산 범위에서 수립한 정책과 사업에 대해 중앙정부가 조금 더 지원하면 그 효과가 더 커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업에 대해 중앙정부와 해당 광역지자체가 다른 지자체와의 의견수렴을 통해 계획과 집행의 정당성을 확보한다면 우리는 예산낭비와 불필요한 지역갈등을 피할 수 있다. 그러한 논의의 장으로 제2국무회의가 제격이다.

“행동 계획에는 위험과 대가가 따른다. 하지만 이는 나태하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데 따르는 장기간의 위험과 대가에 비하면 훨씬 작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한 말이다. 기후변화와 4차 산업혁명, 코로나 19가 새로운 위기와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국가와 시장, 지역사회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대전환 시대에 경쟁과 균형, 다양성이 조화로운 광역자치단체가 탄생한다면 우리는 자율과 책임에 입각한 자치분권 선진국이라는 새로운 국가 패러다임을 이 땅에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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