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그리고 우리의 도시1] 로컬현상과 젠트리피케이션

도시개혁센터
발행일 2024-08-16 조회수 55

[도시개혁 28호/여름호,재창간6호] [나, 너 그리고 우리의 도시1]

로컬현상과 젠트리피케이션

한승헌 도시개혁센터 재생분과 정책위원
henry1128@naver.com

요즘 우리는 로컬이라는 말을 되게 흔히들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가 로컬이라는 단어를 쓸 때에 담는 의미와 범위가 상이하여 추상적이기 때문에 로컬이라는 사용에 따라 용어의 한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OO지역에 대한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보편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지역의 범위는 나라가 될 수도 있고 광역이 될 수도 있고 기초시가 될 수도 있고 읍면동, 더 깊게 들어가서 특정 거리 단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라 차원에서 보는 한국, 도시로서 서울, 동네로서 신사동이나 가로수길처럼 말이죠.

막상 동네로 들어가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우리가 생각한 이런 보편적인 이미지가 깨지는 상황이 나옵니다. 보편적인 이미지로 생각한 지역 내의 모든 동네가 또 같은 보편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지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에는 큰 뭉텅이로 해당 지역을 상상하기 마련입니다. 한국하면 한복, 호주하면 캥거루처럼요. 그러다 조금씩 그 동네에 대해 알아가고 아는 범위가 늘어나다 보면 그 안에서 다른 이미지의 보다 작은 범위의 지역들이 기억에 남게 됩니다. 전주하면 한옥마을처럼요.

이처럼 보다 작은 지역으로 세밀화 되어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그 지역만이 가지는 다른 특징이라는 것을 규정할 수 있고 그것이 그 지역 외의 다른 곳들과는 구분된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밀화된 지역 단위에서 그 지역만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곳을 로컬이라고들 부릅니다. 연세대학교 모종린 교수는 로컬에 대해 '독립적으로 문화를 창출하는 최소 생활권 단위'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여기에 '독립적인 문화 창출'에 주목합니다.

필자의 고향인 전주만 놓고 보더라도, 아니 원도심 도시재생 지역만 보더라도 한옥마을의 문화영역과 객리단길의 문화영역, 웨딩거리의 문화영역이 다릅니다. 명확한 콘텐츠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각 지역의 구분이 아주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곳은 혼재된 모습도 보이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분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공간적 개념으로서 로컬의 범주가 거리(streeet/avenue)에서 골목길(alleyway)을 넘어 특정 건축물 단위의 점포(store)까지 다양합니다. 그래서 로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치와 영역과 문화를 결합해야 합니다. 위도와 경도까지 아주 세밀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여기쯤이라는 인식될 수 있는 장소로서의 위치, area나 scope처럼 범위로서의 영역, 독립적인 콘텐츠가 결합해 정리를 해보자면 '독립적으로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적인 범위를 가진 구체적(지리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로컬의 문화에 반응하거나 로컬에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로컬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로컬현상이라 하며, 이 현상의 중심에는 로코노미와 라이프스타일 이주가 있습니다. 로코노미(Loconomy), 로컬과 이코노미를 합성한 신조어입니다. 지역과 지역성 자체가 소비되는 현상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소비되는 현상', 즉 최근의 소비트렌드는 '로컬'이라는 얘기입니다. 소비트렌드의 변화는 여러 요인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대표적으로 인구의 변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구구조는 초저출생, 만혼, 비혼 증가, 초고령화 등의 요인으로 인해 피라미드 구조에서 종형구조로, 다시 역 피라미드 구조로 변하고 있습니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가구 유형도 변화시킵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다시 1인가구로 대세가 바뀌게 됩니다. 이는 가구별 소비행태에도 변화를 줍니다. KT의 조사에서는 2000년대 들어 취사, 세탁, 청소 등 집안일을 외부에 맡기는 가사서비스 부분의 지출이 증가했다고도 합니다.

우리는 최근까지 팬데믹을 겪었습니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먼 곳으로 가기보다는 인접한 지역에서 필요한 것을 해결하려는 심리가 소비로 이어졌습니다. 팬데믹 때의 소비키워드에 대한 조사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코로나시대 8대 소비키워드로 홈코노미, 온라인쇼핑, 건강, 윤리적 소비, 구독서비스, 중고거래, 보상소비, 새로운 채널을 제시한 것이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일상 회복의 과정이던 2022년의 소비 트렌드에 대한 조사는 신한카드가 진행했습니다, 다시 집 밖으로 나가는 문 밖 라이프, 로코노미, 취향과 상황에 맞춘 보더리스 소비, 새로운 정서적 유대, 일상영역에서 프리미엄 소비재의 도입, ESG에의 관심을 꼽았습니다.

두 조사를 비교해보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집 안에 갇혀 집을 꾸미거나 온라인 쇼핑, 메타버스에서 욕구를 충족한 것에 대한 반동이 집 밖의 오프라인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온라인에서 쉬이 보던 것이 아닌 특정 지역을 가야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팬더믹 동안 고조된 나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은 라이프스타일 이주(lifestyle migration)로 표현되는 지역살이와도 연관됩니다. 라이프스타일 이주는 각 개인이 자신들에게 있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삶의 질이라고 느슨하게 정의되는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장소에 일정기간 머물거나 이주하는 현상(Benson and O’reilly 2009b: 621)입니다. 이는 선진국 출신의 은퇴자나 2주택 보유자가 휴양이나 역도시화(Counter urbanization)의 맥락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해외로 이주하는 현상을 의미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이주는 지리적 이동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 삶의 질, 이전의 제약요인으로부터의 자유 등 단순한 물리적·지리적 이동을 넘어 이주자가 삶의 방식 자체를 재정의하는 실천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라이프스타일 이주는 생계전략인 동시에 라이프스타일의 선택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Zollet 2018: 11). 우리나라도 수도권 집중이 심화하면서 새로운 삶의 기회와 특색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아 지역으로의 전입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이때 라이프스타일은 개인이 추구하는 콘텐츠이고 그 콘텐츠를 공급해줄 수 있는 지역이 사람들이 찾는 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로컬현상이 대두되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예술가들이 젠트리파이어로 지목을 받아왔다면, 요즘은 로컬브랜드 창업자들까지 더해져 젠트리파이어로 간주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술가가 젠트리피케이션의 유발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였던 것처럼, 지역에서 그들만의 아이템으로 창업한 이들도 유발자이기도 하지만 가해자는 아니며, 언제고 이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소상공인은 684만 개사로 전체 기업의 94%, 종사자의 44%(946만명)을 차지(’20년 기준, 중기부·통계청)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으로서의 노포들처럼 로컬브랜드도 오래 지역에 자리잡고 나면 노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신규창업자입니다.

임동근 교수(서울대학교 지리학과)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논의에 대해 대부분 학술적이라기보다는 저널리즘적이며, 우리(종전권리자)가 움직이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와 너희가 움직이지 말라는 요구가 함께 얽혀있는 젠트리피케이션 반대운동의 반변화주의 또한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비춰보았을 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로컬브랜드들에 대해 과잉일반화를 함으로써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재생산하고 편향된 프레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합니다.

계급투쟁으로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얘기하려 하신다면 투쟁의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이기웅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명백한 주체는 투기자본이라고 얘기하며, 다음으로 기획부동산, 권리금 업자, 대형 유통업체, 관광객과 미디어, 중앙 및 지방정부를 꼽고 있습니다. 로컬브랜드도 결국 소상공인입니다.

소비트랜드의 변화에 대한 책임을 업장주에게 물을 수는 없습니다. 춘천의 한 노포 사장님의 “젊은 손님들은 먹는 행위 자체보다는 ’경험‘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맛은 기본이고, 우리가 가진 전통과 감성에 매력을 느낀다.”는 인터뷰에서처럼 사람들의 소비행위가 가치소비와 의미소비를 따라가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사람들의 소비에 대한 수요는 복잡다변한 요인으로 발생합니다. 문제를 삼자면 상인이 아니라 이런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정원오 저, 「젠트리피케이션 무엇이 문제일까」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 긍정론자는 이것이 도시의 성장과정에서 필연적인 과정이며, 이를 과도하게 억제했을 때 오히려 도시의 슬럼화가 진행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동네 밖으로 몰리는 저소득층에게 당장은 좋지 못한 일이지만, 결국 경제 성장으로 그들의 삶 역시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대하는 부정론자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개념을 주창합니다. 도시는 모든 시민의 힘으로 생성되고 유지되기에, 어떤 시민도 그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에 대한 권리 침해이며, 나아가 도시의 성장과 발전에도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동네의 문화적 매력을 상실하게 하고, 결국 다시 침체의 길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책은 긍정론도, 부정론도 아닌, 균형론자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균형론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야 하는 현상이 아닌, 관리해야 하는 현상으로 바라본다고 합니다. 예술가, 상인, 건물주가 적대적 관계가 아닌, 도시를 발전시키는 동반자로서 함께 동네 상권을 활성화하고, 정당한 몫을 나누는 선순환 구조를 이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균형론자는 급진적 젠트리피케이션을 발생시킬 수 있는 투기를 제한하고, 지역 사회 구성원이 협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정비할 것을 주장합니다. 도시의 발달에 따라 생겨날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부정론이 이상주의자의 입장이라면, 균형론은 현실주의자의 입장이라고 책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극복은 단박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새로운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해법들 중 정치적인 문제로 도입되지 못한 것들부터 시도하기에도 버거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기웅 교수의 말처럼 긴 호흡으로 작은 승리들을 하나씩 달성해나가는 현실주의적 전략을 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도 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승리에는 브릭레인이라는 지역에서 강제로 폐업하게 된 카페의 일화처럼 직접적 투쟁의 대상이 아닌 이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트프로젝트를 통한 지역활성화 이후에도 나오시마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빈집과 빈집터에 주목하여 그것의 발생원인과 아트프로젝트와의 관련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나오시마의 단독주택을 대상으로 빈집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였고, 빈집 및 빈집터의 분포, 빈집 발생원인 등을 조사하였다. 현지조사에서 빈집 또는 빈집터로 남아있는 사례가 최소 100건 이상 확인되었다. 아트프로젝트 이후에도 나오시마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는데, 아트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이전인 1995년에 비해서 약 25% 정도 감소하였다. 나오시마가 아트프로젝트를 통해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문화예술을 활용한 지역활성화 방안은 지역브랜드의 가치상승, 경제적 이익창출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의 상당 부분이 지역 외부로 유출되면서 지역주민과 지역사회로 분배 또는 재투자 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지역의 안정적인 정주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키고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나오시마의 인구감소와 빈집증가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나오시마 아트프로젝트에 대해 인천대학교 이호상 교수가 진행한 2018년 연구 내용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오버투어리즘이나 관광젠트리가 지역쇠락을 가속화시킨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의 지역 내 선순환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로컬현상과 관련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는 결국 임대료상승폭에 대한 고민과 상권 내 거주자를 위한 업종의 확보, 경제적 이익의 지역 내 선순환구조의 구축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로컬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는 「로컬담론」이 주제인 기획회의 601호에서 조희정 박사의 얘기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지금도 로컬에서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지역 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주민과 이주자 갈등, 고령자와 청년의 갈등, 국비에 의존하는 지자체, 지원금 헌팅으로 위장 창업하는 사업자, 토호와 새로운 세력의 이익과 권력 갈등 등 많은 갈등과 위기 요인이 진행되고 있다. 제도 정비나 교육과 실천 노력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로컬이 문제라고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은 더욱 문제다. 잘 들여다보면 대도시에서도 언제나 발생하는 갈등이고, 단지 그게 익명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로컬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두드러지면서 마치 로컬만의 현상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어쨌든 로컬의 의미와 가능성 그리고 문제는 동시에 진행되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자족의 삶의 실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금 로컬이 주목받는 건 로컬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지금 나의 삶이 중요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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