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개혁 28호/여름호,재창간6호] [나, 너 그리고 우리의 도시4]
주택 시민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
‘책 서평’ -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닐 브레너, 피터 마르쿠제 외)
이용준 경실련 경제정책팀 간사iron_cageee@ccej.or.kr
이 글은 허버트 마르쿠제의 아들 피터 마르쿠제(Peter Marcuse)의 논평 ‘주택 문제 해결에 비판적 접근하기’를 따라 오늘날 주택 시민운동의 방향을 탐색해본다. 비판이론가 마르쿠제는 신자유주의 주택시장의 무능을 폭로하면서 우리가 이 체제를 단호히 거부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쿠제와 비판이론적 관점은 오늘날 주택시장의 참여자들(정부, 은행, 민간기업, 주택공기업 등)이 체제 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글은 주택시장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을 경제적 문제로 살펴보고, 시민운동의 영점을 다시 체제 비판으로 돌려보고자 한다.
시장을 통해 주택이 공급될 때
“모든 사람이 집을 소유할 수는 없다”
2024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부동산 규제완화를 호소하며 강조한 발언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주거복지를 포기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윤 대통령은 오늘날 주택시장을 대담하고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주택시장은 태생적으로 소수의 이윤추구를 위해 다수의 미래를 담보 잡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르쿠제는 오늘날 주택 위기를 자본주의 체제의 내재된 결과로 진단한다. 즉 주택가격이 투기 수준으로 폭등하고, 주택 압류와 부실채권이 쏟아져 나오며, 빈곤층까지 부동산 이윤추구에 동원되는 오늘날의 주택 위기는 체제의 비이상적인 작동 탓이 아닌, 오히려 너무나도 정상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발생한다.(피터 마르쿠제, 2023: 358)
주택이 시장에서 매매될 때, 이 거대한 물건은 다른 모든 상품처럼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돼야 한다. 공급과 소비 시간을 단축해야 신속한 이윤 축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은 그 어떤 상품보다 생산과 소비시간이 느린 상품이다. 생산 주기가 장기화되면 지속적인 자본 투하(노동력 및 원자재)를 보장하기 어렵고, 시장 상황에 따라 예상치 못한 수요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주택은 고유한 물성 탓에 자본과 이윤의 안정적인 회수를 담보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 무겁고 거대한 상품의 항구적인 이윤 회수와 회전속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를 설계한다. 주택과 금융시장이 연계되는 순간이다. 주택 생산 과정은 몇 단계(토지매입, 시공, 착공 및 입주 등)로 나눠져 각 시기별로 금융 대출이 실행된다. 자본 투입에 시차를 둬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서다. 은행은 빌려준 돈 받을 권리(대출채권)를 다시 유동화 증권으로 쪼개 판매한다. 부동산은 선분양이란 기적의 발명품 덕분에 만들어지기 전에 팔린다. 건설사들은 분양대금을 대출상환에 쓰는데, 토지매입을 위한 최초의 대출(브리짓론)은 사실상 소비자의 최종적인 주택담보대출로 차환되는 셈이다.
시행사, 시공사, 금융사, 심지어 공적자금까지 주택 대출 차환시스템에 문제가 없다고 연대보증을 선다. 주택 금융 시장은 마치 위태로운 젠가 블록탑과 같다. 자본의 한쪽 흐름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장 전체가 파괴적인 위기를 겪는다. 한편 특정 부동산의 사업성은 최대한 불투명하게 운영된다. 충분한 정보는 의사결정 시간을 지연시키고 자본회전율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따라서 정부는 사업자의 공시 및 보고 의무까지 최소화하는 정책적 지원에 나선다.
주택시장에 투입된 자본들은 특정 시점에서 회수 위기를 맞는다. 임금이 주택가격 상승을 수반하지 못해 유효수요가 감소하면서다. 자본 순환의 정체는 사실 주택시장이 금융화되면서 이미 예견된 내재적 결과다. 자본주의 주택시장은 체재 내에서 자신의 수요를 재생산하기 어려운 구조적 모순에 빠진다. 주택가격 상승만큼 근로 소득도 올라야 하는데, 건설산업에 투하되는 잉여자본의 원천 자체가 저임금 노동이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면 투자할 자본이 줄고, 임금을 내리면 비싼 주택을 구매할 사람이 축소된다. 따라서 시장은 저임금 노동을 유지하면서 주택 수요를 늘려야 하는 마법이 필요해진다. 바로 주택구입 금융대출 상품들이다. 즉 자본주의 주택시장은 대출 없이 지속적인 유효수요를 창출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은행의 대출 규모가 커져야, 수요와 주택공급이 늘고, 건설사 이윤과 은행들의 안정적인 이자수익도 극대화된다. 따라서 주택시장은 더 많은 의제자본(fictitious capital)을 필요로 한다. 투자자를 유인하기 위해 주택의 미래 가치를 담보한 금융상품들이 판매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택은 빵과 달리 의제자본을 충족할 만큼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택가격이 신규 수요를 견인할 수 없을 만큼 투기적 수준까지 올랐을 때, 자본주의 정부는 각종 조세혜택을 동원해 저소득층, 청년, 고령층, 저신용 근로자에게 미래를 팔라고 설득한다. 한편, 정부는 시스템 위기가 발생하면 수조 원의 정책자금을 투입한다. 이는 주택시장의 ‘패닉셀(panic sell)’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면서 은행에게 던지는 메시지기도 하다. 주택가격의 추세적 상승을 예측할 수 없다면 은행들은 돈을 풀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버블의 장기화는 은행들의 안정적인 이자 사업에 유리하다. 따라서 정부는 각종 주택가격 하락 억제 정책을 통해 은행들의 지속적인 이윤 축적을 보장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하면, 자본주의 주택시장은 ‘상품화된 부동산의 가치증식에 기생한 금융상품의 팽창’ 없이 지속 불가능한 체제로 요약할 수 있다. 부동산펀드와 리츠 통계를 보면 부동산-금융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의제자본을 팽창시켰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2024년 부동산펀드와 리츠 자산 총계는 각각 약 160조원, 98조원으로 2014년 약 30조원, 15조원 대비 430%, 550% 급증했다. 같은 기간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건설원가가 359만원/㎡에서 394만원으로 소폭 오른 점을 고려해보면, 부동산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주택의 사용가치를 초과했는지 알 수 있다.
“공공영역의 시장화”
자본주의 주택시장과 공공영역의 상호작용도 살펴봐야 한다. 먼저 국가의 주거지원비용은 최빈민층 수준에서 정해지는데, 사실상 모든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주거복지 책임이 사라진다. 저소득층의 실질적 주거 필요가 충족되면, 주택시장의 유효수요로 유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한국 정부의 주거급여 기준은 중위소득 48% 이하(4인가구 292만원) 수준으로, 사실상 임금 노동을 한다면 받을 수 없다. 즉 불충분한 주거복지는 무정한 정부의 정책적 선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주택시장 체제의 내재적 결과로 봐야 한다.
주거복지 전문 공기업에 대한 국가 지원도 유효수요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아주 소극적으로 수행된다. 따라서 자기자본만으로 임대아파트 공급 확장이 어려운 공기업들은 민간자본의 개입이 필요해진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지원형민간임대아파트 사업 확대를 위해 리츠를 도입한 점은 흥미롭다. 자기자본 사용 비중을 줄이고, 타인자본(부채) 비율을 극대화하려는 금융기법이다. 부채는 법인세 감세와 리스크 외재화 측면에서 자기자본보다 유리한 전형적인 시장경제 전략이다.
2024년 상반기 LH의 운용리츠 규모는 17조원으로 2017년 같은 분기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시기 한국의 총 주택 리츠 자산이 46.95조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LH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LH의 다수 임대아파트가 사실상 민영화되고 있다는 점을 넘어, 주택공기업의 자본구조가 부동산 가치 증식에 의존한 금융자본을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단 점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처럼 공기업들이 부동산 의제자본에 의존적일 때, 문제는 공공임대 아파트의 공익가치 훼손에 멈추지 않는다. 민간자본의 공공임대주택 사업 비중이 늘어나면, 누구보다 주택가격 상승을 갈망하는 주체는 공기업 자신이 된다. 공공임대주택에 투자하는 민간자본의 투자 수익은 임대료가 아닌 매매차익이 결정한다.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는 민간투자자들의 즉각적인 이윤 회수가 가능한 수준까지 올릴 수 없다. 임대주택 수요자인 저임금 노동자의 지불능력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기업은 주택 임대 종료 후 건축비, 지대 상승, 유지보수비, 금융이자 등을 포괄한 자산의 매매차익을 보장하지 않고 민간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워진다. 나아가 주택의 자산가치가 높아져야 부채사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부채비율이 늘어나면 다시 자산의 매매차익 의존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생활필수품이 시장에서 공급되는 체제를 거부하기”
“(...)도시 중심에 있는 토지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엄청나게 상승시킨다. 그러나 토지 위에 이미 세워져 있는 건물들은 그 가치가 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 건물은 철거되고 다른 건물로 바뀐다(...) 건축업은 비싼 주택을 훨씬 더 유리한 투기대상으로 보는데, 노동자들의 주택은 오직 예외적으로 건축된다”_프리드리히 엥겔스 「프루동은 주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엥겔스가 묘사한 1872년 주택 문제는 오늘날과 놀랍게 유사하다. 자본주의 태동기를 살았던 엥겔스와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있는 셈이다. 주택문제의 경제적 문제를 검토한 엥겔스의 최종 결론은 “주택난을 끝장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은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전반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엥겔스, 2019: 16~125) 하지만 데이비드 하비의 말대로 자본주의를 구하지 않아 발생하는 비용은 너무나 비싸다. 그렇다면 주택 시민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민운동은 몇 개의 정책 요구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정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단발적인 주택 시민운동을 그만두자는 말이 아니다. 주택 상품화의 여러 특성을 제한하는 모든 시도는 지지돼야 한다.(마르쿠제, 371~372) 하지만 주택 시민운동은 체제의 효과가 아닌, 체제의 작동원리를 끊임없이 폭로하는 ‘전망’을 해야 한다. 전망하는 운동은 좌절할지언정, 진보할 수 있다. 하지만 전망 없는 운동은 영원한 오늘의 시간에 갇혀버린 소꿉놀이에 불과하다. 예컨대 ‘시장’은 용인한 채 분양원가만 공개하란 요구는 충분치 않다. 차라리 주택시장이 사소한 외부 충격에도 얼마나 빨리 야만적인 본색을 드러내는지 추적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임대료 폭등이 트빌리시 시민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신자유주의 주택시장이 터키의 지진 재난민을 어떻게 외면했는지 말이다.
나아가 우리는 체제를 수용한 분열적인 입법 운동을 넘어, 차라리 체제를 거부해야 한다. 마르쿠제식으로 ‘민간시장을 거쳐 생활필수품의 하나를 공급하는 체제’(마르쿠제, 370)를 거부해야 한다. 따라서 운동은 주택이란 상품을 구성하는 이윤 축적 요소를 하나씩 제거하는 단계적 조치로 설계돼야 한다.
최근 네덜란드의 탈금융화 주택 정책 실험도 참고할만하다. 네덜란드는 1990년대부터 주택 생산체제 전체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금융시장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 공간계획이 분권화되면서 지자체는 금융화된 신자유주의 주택정책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Jannes van Loon, 2024) 그 결과 암스테르담시는 토지소유와 계획 권한을 활용해 모든 신규주택의 80%를 저소득 및 중산층 가구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지자체의 성공적인 탈금융화 주택정책이 중앙정부 차원의 급진적 정책 전환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최근 신자유주의적이고 금융화된 주택시장에서 벗어나 중앙집권적이고 국가 주도적인 정책 전환을 이루고 있다. 물론 시장경제를 유지한 주택생산 체제 내부에서 중앙정부, 지자체, 민간자본들이 어떤 모순적인 갈등을 일으킬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유럽의 학자들이 발생 가능한 갈등을 검토하고, 네덜란드의 급진적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