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1] 중앙집중형 개발에 따른 지방홀대와 선개발 후계획 체계로 회귀

관리자
발행일 2023-08-01 조회수 3889

[도시개혁 26호/여름호,재창간4호] [특별기획1 : 윤석열 정부 도시정책 1년 평가 / 도시계획 및 균형발전]

‘중앙집중형 개발에 따른 지방홀대와 선개발 후계획 체계로 회귀’


황지욱 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장
jwhwang@jbnu.ac.kr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100일이 지났을 때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점검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언론보도와 기사를 취합하면서 살펴본 평가는 이랬다. “공약은 공적 약속이다. 국민에게 "정말 나 이런 사람입니다. 정말 잘 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하고 내놓은 약속이다. 그래서 취임 이후 100일은 국민이 어떤 로드맵 속에 약속이 실천될 지를 기다려준 시간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8월 17일로 출범 100일을 맞았건만 취임 당시 내세운 균형발전과 지방시대는 퇴색을 넘어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는 날선 비판이 일었다.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학과가 집중적으로 신설되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오로지 수도권 규제완화와 집중만 있었고 지방은 모든 것에서 찬밥이었다. 이런 단적인 평가는 지방의 공공기관 근무자들의 근무자세에서도 확인되었다. 전라북도 새만금 지역에 있는 모 정부기관의 근무자들은 파견되는 날부터 다시 본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고 있었다. 전언에 따르면 그들은 괜히 아무 일도 벌이려고 하지 않는단다. 괜히 일을 벌여놓고 문제가 터지면 골치 아프게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아예 조용히 지내다가 다시 본청으로 돌아가는 것이 능사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정부 때도 그랬다. 만약 그렇다면 벌써 10여년 가까이 계속되어온 문제인데, 지방시대를 강조하는 지금 정부에서는 분명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균형발전에 대해 말보다 실천을 요구한다.

2023년에 들어 정부는 ‘도시계획 혁신방안’을 발표(2023.01.06.)하고 국회에서 관련 법인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이번 방안은 혁신구역으로 지정하면 한편으로는 용도제한에 대한 입지규제 최소화와 용도지역별 부처간 칸막이 해소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신속개발이 가능하도록 법적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를 갖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용적률과 건폐율, 사용 용도에 관한 도시계획에 따른 규제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개발을 허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발맞춰 서울시는 앞장 서서 용산개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등 각종 사업에 도시계획 혁신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고, 국토부도 지난 3월 도시정책협의회를 개최해 공간혁신구역 선도사업 후보지 선정을 논의하는 등 본격적인 속도를 내고 있다.

경실련이 우려하는 도시계획 혁신방안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법 조항에는 도시계획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사안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지나고 사회가 바뀌면 그에 따라 법 규정도 더나은 미래를 위해 전향적으로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회적 협의와 합의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그냥 정부의 생각이니 밀어붙이겠다는 혁신방안은 지난 30년간 국토를 ‘先계획 後개발’ 하려는 국토계획법의 취지를 무력화시키고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사안이 될 수 있다. 10년 뒤, 20년 뒤의 도시를 내다보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존의 체계를 무시하고 혁신구역을 지정해 무제한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면 지금 당장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무분별한 개발로 망가진 도시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큰 틀에서의 도시계획을 무시하고 도심 안에 구멍을 뚫어 고밀 개발할 경우 교통, 재난, 여러 가지 밀도 문제 등이 발생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대도시 집중의 이런 정책이 대도시, 수도권의 인구를 급속히 빨아들임으로써 국가가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균형발전이나 지역의 혁신에 대한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해 지방소멸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이런 우려는 이미 지난 6월19일에 수도권과밀억제권역 10개 지자체가 국회에서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한 것에서도 가시적인 후속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론보도를 보면 국가성장관리라는 핑계를 들어 또다시 수도권개발과 집중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 듯하다. 국가성장관리가 꼭 수도권을 통해서 이뤄져야한다는 주장은 도대체 무슨 논리적 당위성을 지닌 말인가? 지금까지 조금 눌려있던 특혜를 다시 대놓고 독차지하겠다는 어거지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2010년대에 국토부 수도권정비실무위원을 하면서 느꼈던 바는 아무리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있어도 결국 뭔가를 하고자만 하면 ‘경미한 변경’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리고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뭐든 야금야금 다 할 수 있었던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거치며 2010년대 말부터 나타난 지방의 화두는 ‘지방소멸’이었다.

둘째로 현행법으로도 가능한데 무리한 제도 변경은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담당해야할 갈등관리는 아주 중요한 임무라고 본다. 국가의 균형발전도 지역간 불균형에 대한 갈등관리요, 사회적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는 갈등관리라고 본다. 이런 전체를 보는 국토 및 도시관리 계획이 정부의 가장 핵심적 사안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계획이 필요한 것이었고, 이 선계획의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낙후된 도시를 개선하고, 혁신을 위한 개발을 법률 내에 보조적 장치로 명문화시켜 두었던 것이다. 즉, 현 정부가 추구하는 혁신구역의 개발 등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단적인 예를 들어 ‘지구단위계획’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특정용도의 대규모 개발계획까지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도시계획의 체계를 흔들면서까지 무리하게 정책을 펼치려는 것은 여러 부작용만 낳을 것이다. 특히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선심성 지정이 될 우려도 매우 크다. 벌써 지방정부에서도 과도할 정도로까지 개발계획을 세우고, 개발을 밀어붙이려고 하고 있다. 지방의 도시계획위원회가 무력화된 느낌까지 들 정도이니 중앙정부에서 불어오는 미풍이 지방정부에서는 태풍으로 돌변한 느낌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개발이 지방에서는 도시별로, 도시 내에서도 심각한 불균형적 쏠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개발이 안 되는 곳은 경쟁력을 잃어 더 큰 박탈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기존의 입지규제최소구역을 폐지하고 도시혁신구역을 새로 도입했다. 입지규제최소구역은 쇠퇴한 도시 기능을 재정비하기 위해 2015년 도입된 제도다. 지금의 도시혁신구역과 같은 목적이고 구역으로 지정되면 용적률, 견폐율, 높이 제한 등 다양한 건축규제 완화로 고밀개발과 신속한 개발이 가능하다. 정부 주장대로 공공중심, 민간 참여유인 부족 등으로 활용성이 저조해서 개선이 필요하다면 일정 부분 개선을 하면 되지 기존 제도를 폐지시키면서까지 새로운 구역을 도입한 것은 매우 경솔하다. 입지규제최소구역에 있는 주거비율상한 40% 등 난개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 조차도 없애고 파격적인 규제완화로 민간 개발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도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도시혁신인지 묻고싶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부동산의 집값문제를 잡았다고 자평한다. 현 정부의 주거 정책은 ‘시장기능 회복을 통한 주거 안정 실현’이라고 보여진다. 민간시장을 통한 주거복지 지원강화과 부동산 세제 정상화가 가장 많이 등장했던 표현이다. 하지만 주택문제는 ‘잡고 안 잡고’와 같이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부동산은 세계경제와 금융 상황에 따라 쉽게 출렁거릴 수 있으며, 수도권의 인구 과밀, 산업 과밀, 고등교육 과밀 등의 온갖 과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이상 단기적 개선효과는 지속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민간을 통한 시장기능의 강화와 달리 정부의 기능도 중요하다. 왜곡된 시장기능을 바로잡기 위해 도입했던 고가의 다주택자 보유세 부담, 취득세와 양도세 중과의 부담을 급격히 완화시킨 정책은 다분히 다수가 살고 있는 대도시의 고소득 유권자를 의식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지난 정부가 무리하게 과격한 정책을 펼쳤다면 이번 정부는 과도하게 지난 정부를 지워나가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저소득계층과 무주택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주택 지구 지정, 서민주거복지 재원마련, 깡통전세 문제의 국가적 책임과 같은 정책마련의 세심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지난 정부나 지금 정부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시개발 공급계획을 집중하고 있는 점은 정말 우려스러울 뿐만 아니라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정부에서도 개발제한구역(GB: 그린벨트)을 잠식해가며 지속적인 개발을 일삼아왔는데, LH 토지주택공사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소식에 따르면 지금 정부도 도시개발 설계용역이 대부분 수도권을 대상으로 발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수도권의 과밀은 초과밀로 이어질 것이며, 그린벨트는 더욱 파해쳐 질 것이고, 무엇보다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시대를 열겠다"라고 외쳤지만 비수도권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체감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정책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도시재생과 관련하여 국토부는 지난 정부의 사업이라고 '과감한 축소'를 공표한 지 오래 되었다. 중앙부처의 ‘재생’이 들어간 실과의 명칭도 대부분 바뀌어 버렸다. 얼마전에는 모 학회의 단톡방에서 작은 해프닝도 발생하였다. 모 부처의 담당자가 정부에서 ‘재생’이라는 단어에 경기를 일으키듯이 대하는데 혹시 학회명칭을 바꿀 수는 없겠냐는 뉘앙스의 말을 꺼냈다는 것이다. 하루만에 없던 일이 되긴 하였지만 수십년 지속해온 학회가 하루아침에 학회명을 개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지방은 민간의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곳이다. 민간투자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최고의 수익을 추구하기에 인구도 적고 개발수요도 적은 지방 중소도시에 투자하지 않는다. 그런 행위는 위험요소가 너무 크다. 그렇기에 이런 곳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공적자금을 통한 투자사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공적투자의 한 축이었던 ‘도시재생’이 사라져 버렸다. 지방의 혁신을 위한 작은 마중물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대안이 제시된 것도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여전히 선명하게 잡히지 않고 있다. 지방시대 위원회가 출범했지만 활동을 느끼기가 어렵다. 언론에서도 이와 관련된 기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개정은 얼마나 우리의 국토와 도시를 건강하고 계획적(?)으로 바꿔놓을지 의문이 든다. 벌써부터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개발을 놓고 벌이는 날선 대립과 갈등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언제쯤이나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도시관리 정책이 마련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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