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개혁 28호/여름호,재창간6호] [특별기획3]
부동산 PF 위기로 드러난 한국 도시개발금융의 후진성
김천일 강남대학교 부동산건설학부 조교수ckim@kangnam.ac.kr
과거에는 건설사가 직접 기업금융의 형태로 대출을 통해 토지를 매입하였으나 건설사의 부채가 증가하고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시공과 시행이 분리되었다. 시행사의 열악한 자본력과 비전문성으로 인해 금융기관은 시공사로부터 연대보증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후 시공사가 짊어지는 과도한 리스크를 분산시키고자 건설사의 책임준공 의무, 증권사의 자금보충 의무, 신탁사의 책임준공 확약 조건으로 PF 구조가 변질되었다. 증권사와 신탁사의 PF 대출에 대한 책임범위가 확대되면서 PF 부실 위험이 금융권 전반으로 확대된 것이다.
시행사가 총사업비의 5~10%로 PF를 일으키는데, 브릿지론 상환을 본 PF 대출로 하고 본 PF 대출은 수분양자의 선분양 대금으로 갚는 구조이다. 사업 단계별로 상환이 완결되지 못하고, 결국 소비자가 제공하는 선지급금에 의존하는 구조인 것이다. 한쪽이 막히면 사업이 장기화되고 부실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까지 피해를 입게되는 것이다. 민간 PF 뿐만 아니라 공공지원민간임대리츠와 같은 민관협력 사업에서도 입주자로부터의 보증금이 재원조달 구조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소비자로부터 목돈을 받아서 사업비로 활용하는 것은 후진적인 구조이다. 부동산 금융 부문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이 선진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운영되어야 부작용이 없는 PF 구조를 억지로 가져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공하면, 자본금을 조금만 투입한 시행사 및 기타 참여자들이 큰 돈을 챙기게 되지만 실패하면 그 파급효과가 시행사, 시공사, 금융기관, 금융기관 예금자, 수분양자까지 전체로 퍼져나가는 매우 기형적인 구조이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의 대표적 사례이다. 사업성 평가를 면밀히 하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대출을 실행해야 하는데 시공사 신용만 믿고 대출을 해준다. PF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PF 대출은 고금리이므로, PF 대출을 실행하면 이자수익을 많이 챙길 수 있어 금융기관은 PF 대출을 남발해왔다. 금융기관이 과도한 대출을 해 놓고 문제가 발생하니까 재정 투입을 해달라고 한다. 민간 연구소들의 보고서들은 PF 위기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과 평가를 늘어놓지만, 결론은 결국 재정투입을 하던지 우량 금융사들이 자금을 각출하던지 해서 건설사 및 금융사들을 살려달라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지급금이 PF 재원조달 구조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수분양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선분양 대금으로 본 PF 대출을 상환하는 후진적 구조와 관련하여, 종합건설업 산하 연구기관에서는 건설업의 회생을 위해 도와달라는 말은 해도 분양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선분양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건설부문(시공사, HUG 등)은 “선분양이야말로 한국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여기고 선분양 제도를 해외 수출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분양에 대한 인식이 이와 같다. 한편, 금융부문은 후분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분양을 하면 시행사가 자기자본을 늘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이 논리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자본투입 여력이 없는데 분양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자본투입 여력이 갑자기 늘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지금 후분양을 무조건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자금여력이 낮은 중소건설기업은 “후분양을 강제하면 우리는 망한다”라는 입장이다. 후분양을 본격화한다는 것은 건설산업 구조 전반의 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후분양을 쉽게 얘기하는 금융부문의 주장은 이러한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시행사의 자기자본 현금 투입비율을 총사업비의 20~30%로 증가시키자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PF라는 것이 이론적으로 보면, 사업성(project feasibility)이 확실하다면 자기자본 투입없이 대출만으로도 사업이 작동되어야 하는 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PF에서는 통상 20~30%의 지분(equity)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분투자는 자금 제공 역할 뿐만 아니라 위험분담에 참여하고(skin in the game), 프로젝트에 대한 관리·운영에 안전성을 부여(safeguard)하는 역할을 한다. 재원조달 구조(capital structure)는 통상 선순위 대출(senior mortgage debt)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후순위 대출(junior mortgage debt), 메자닌 금융(mezzanine financing, 지분투자의 형태 혹은 대출의 형태 둘 다 가능한 재원조달 방식), 우선주(preferred equity) 투자, 보통주(common equity) 투자가 적절한 비율로 혼합된 형태로 구성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지분투자 및 대출의 적절한 조합으로 재원조달 구조가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건설사의 연대보증에 신탁사의 보증 및 증권사의 보증을 덫 씌운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의 부동산 PF에서는 보증까지 필요한 사업은 통상 대단위의 사업이다. 보증을 이리저리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보증까지 활용해야 하는 것은 PF의 단점인 것이다. 그래서 보증은 정부(state) 혹은 대규모 은행이 담당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소규모 기관들이 여러 형태로 보증을 겹치기하여 대출구조를 지탱하는 “한국형 PF”는 PF라 할 수 없다. 사업성 평가가 가장 중요한 PF에서 사업성 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는 PF가 무슨 PF인가? “PF”라는 글자를 삭제하고, 그냥 “기형적 대출관행”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의 금융은 아직 PF를 채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보증 겹치기” 구조는 곳곳에서 문제를 발생시킨다. 책임준공확약형 관리형토지신탁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신탁회사는 담보 관리 및 사업 수행을 위해 신탁계약(위탁자는 시행사, 수탁자는 신탁회사)을 체결하여 부동산 PF에 참여한다. 신탁방식은 부동산을 담보로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 보다 편리하고 비용도 절감되므로 신탁회사를 많이 활용한다. 신탁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본 PF 시 신탁회사가 시행사가 되는 관리형토지신탁을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탁회사가 사업주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책임준공확약이 들어가면 시공사가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신탁사가 책임준공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시공사가 참여하는 경우 신탁사로부터 책임준공확약을 통한 신용공여를 제공받아야 금융기관이 PF 대출을 실행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 대형 개발 뿐만 아니라 중소형 평형 주택공급 사업에서도 부실 위험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은 이미 작년 초에 감지되었다. 한국신용평가는 개발신탁 사업규모에 있어 책임준공확약형이 62조원, 차입형이 26조원으로 책임준공확약형의 규모가 2.3배 크다고 진단하였다. 책임준공확약형 사업장에서 준공 지연으로 인한 위험이 관찰되었으며 부동산 경기가 더 악화되면 신탁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되어 책임준공의무가 이행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신탁계약 뿐만 아니다.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자산유동화기업어음, 전자단기사채)에 대한 채무보증 주체는 주로 증권사이다. 유동화 업무를 맡게 될 자산관리회사가 유동화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유동화회사가 채권을 넘겨받아 투자자에게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경우 통상 시공사나 금융사의 신용보강이 들어간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증권사와 건설사들이 유동화증권에 대한 채무보증의 대부분(80~87%)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많이 발행되는 증권은 전자단기사채(전단채)인데 만기가 보통 3개월로 짧다. “3개월 뒤에 1억 1천만원을 준다”라는 조건의 채권을 1매당 1억원으로 발행하여 이 채권을 인수기관(증권사)을 통해 일반투자자들에게 1000장을 팔면 1000억원이 조달된다. 개발이 완료되기까지는 짧아도 4~5년이 소요되므로 불과 3개월 뒤에 1100억원을 상환할 수 없다. 그래서 차환(돌려막기)을 한다. 다시 1100억원 상당의 채권을 발행하고 판매하여 그 판매대금으로 상환하는 것이다. 거시경제적으로 금리 불확실성이 증대되거나, 단기자금시장에서 유동화증권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거나,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돌입하거나, 시공사의 기한이익상실(event of default) 등 사건이 발생하면 차환에 실패하게 된다. 차환에 실패하면 증권사와 시공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PF 부실로 이어지게 된다.
같은 계열사가 시행에 대해 지급보증을 하고, 건설사가 부실 유동화증권을 매입한다. 빚으로 빚을 갚고, 그 빚을 갚는다는 약속을 그물망처럼 덧댄 대출-보증구조를 전면적으로 손봐야 하는데, 정부는 수술이 필요한 부위에 소독약만 바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부동산 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 보도자료를 통해 정상 사업장에 대해서는 보증 확대 및 자금 공급, 부실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이 토지 매입 및 부실채권 매입으로 대책 방향을 설정하였다.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한편, 전체 사업장의 90~95%가 정상 사업장이라고 진단하면서, 230조원의 PF 대출 가운데 5~10%(11조 5000억~23조원) 가량이 “유의”나 “부실우려” 판정에 해당하는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한다. 이 수치는 믿을 수 있는 수치일까?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누가 감독해야 하는가? 우리 모두가 감독해야 한다. 그러므로 부동산 PF 사업장 및 대출·보증에 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 “부동산 PF 정보공개법”을 제안할 수 있겠다. 부동산 PF 부실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 전에 재무적 불확실성 증대(2022년), 우발채무에 대한 경고(2023년)가 있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및 대주단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조치를 취하면 시장 혼란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PF 대출에 대한 신용보강은 건설회사의 우발채무를 낳는다. 이에 대해 공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현행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의하면 부채는 반드시 사건을 전제로 하며, 우발부채는 잠재적인 의무만 있을 뿐이어서 부채의 인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석(footnote)으로 공시하며, 자원의 유출가능성이 매우 낮다면 주석으로도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PF 대출의 경우 부실화되면 그 파장이 사회전반에 미치므로 기업-투자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 측면에서 공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도에서 해당 PF 사업장을 클릭하면 토지정보, 건축정보, 시행사, 건설사, 신탁사, 증권사, 금융기관, 대출특성, 보증구조 등 모든 자료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가 친절히 공개되어야 한다. 불완전한 자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알아서 찾아라”라는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지 말란 말이다. 그리하여, (회전문 인사로 인해) 금융당국인지 금융사인지 법률사무소인지 경계가 모호한 어떤 알 수 없는 정부기관이 발표하는 숫자만 목 빠지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 감독기관 및 일반인들이 그러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부실 위험에 대해 선제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PF 사업의 위험을 관리하는 것은 도시공간의 밀도를 관리하는 측면과 연결된다. 기형적 대출-보증구조로 인해 단기에 위험한 자금이 과잉 공급되어 빈 땅만 있으면 도심, 외곽 가리지 않고 최대 용적률로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면밀한 수요 분석 및 사업성 검토를 하지 않아 오피스텔, 아파텔, 생활형숙박시설, 도시형생활주택 등 준주거공간들, 그리고 휴먼스케일에 어긋나는 거대하고 흉측한 모습을 한 지식산업센터들이 아무 곳에나 우후죽순 건설되고, 대형 주상복합 건물들이 난립하게 된 것도 “기형적 대출관행” 탓이며, 본 PF로 진입하지 못해 건설 자재들이 뒹구는 빈 땅들을 여기저기 널브러지게 만든 것도 “기형적 대출관행” 탓이다. 금융이 도시를 망치는 것이다. 어떤 곳에, 어떤 주택이 공급되어야 할지 고민하고 그러한 곳에 필요한 주택이 적정 밀도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소건설사, 전문 디벨로퍼, 서민금융, 공공지원이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주택공급구조가 지역기반 및 근린맞춤형(tailored)으로 짜여져야 한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는 PF 돈놀이판을 그만 기웃거리고, 서민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